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5-11)
2017.11.18 01:16

은혜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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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es-on-a-hill-crucifixion-cross-jesus-christ-christian-religion-church-bible_bt9gwa42_thumbnail-full01.png 역대하 32장 20-26절


우리는 몇 주간에 거쳐서 역대하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역대하에 소개되는 아사왕과 여호사밧왕에 이어서 오늘은 히스기야 왕을 묵상하게 됩니다. 아사나 여호사밧이나 히스기야의 공통점은 다윗 이후에 가장 훌륭한 왕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더더욱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시 어느 시대나 위대한 인물들은 기도하는 분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이들, 위기를 뚫고 승리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용사여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아사왕은 구스의 100만 대군을 맞이해서 어찌할 줄을 모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영광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 큰 무리의 공격을 받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지만은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세요. 그 성가대들을 앞세워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갔더니 하나님이 복병을 일으키셔서 그들이 서로를 쳐서 공멸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사밧에게 큰 승리를 주신거죠. 

히스기왕도 마찬가지에요.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많은 대군을 이끌고 남왕국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포위했습니다. 우리로써는 저들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 때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서 그 모든 앗수르 대군을 무찌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하는 아사왕에게 41년동안 남왕국 유다를 통치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가 통치할 때 온 나라가 사방에 평화가 임했더라 그랬습니다. 여호사밧왕은 25년동안 남왕국 유다를 통치했는데 나라가 태평하고 사방이 평안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거에요. 히스기야는 29년 동안 통치했는데 하나님이 사면으로부터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보호해주셨어요. 그리고 그가 아주 존귀하고 귀한 인물이 되게 하셨어요. 그리고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결렸지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역시 그들은 위대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한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사나 여호사밧이나 히스기야에게도 실수가 있었고 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대하게 사용하시고 축복하고, 강성하게 하고, 전쟁에 이기게 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만함으로 때로 버림받기도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아사왕은 훌륭한 왕이지만 북이스라엘이 공격해 올 때 그들을 대항할 힘이 없으니까 저 아랍 나라에 가서 벤하닷왕에게 뇌물을 주고 그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그는 죽이기도 하고 자기가 병들었을 때 여호와께 기도하기 전에 의원들에게 가서 뭔가 병치료를 받으려고 했어요. 그것 때문에 그는 마지막에 하나님께 버림받는 왕이 됩니다. 그런가하면 여호사밧왕은 이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그런 악한 왕이었는데 그와 협력하기 위해서 혼인관계를 맺어요. 그것 때문에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히스기야 왕의 실수는 뭘까요. 자 오늘 우리 성경 역대하 32장 2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의 생애에 아주 흠이 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아니 위대한 왕 히스기야, 다윗 이후에 가장 존경받는 히스기야가 어찌 마음이 교만할 수 있을까. "그가 또한 여호와의 은혜에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 이게 안타까운 말씀이에요. 여러분 히스기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온 백성에게 명령했습니다. 성전에 레위인들이 일할 수가 없어요. 왜? 양식이 없어서 먹지를 못하니까 다 도망가서 농사짓고 이런 거예요. 그래서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규례대로 십일조를 드려라. 십일조를 드리는 그 양식을 가지고 레위인들이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예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는 성전을 정결케 하서 우상을 다 몰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터널이라는 역사 속에 유명한 터널을 만들었는데, 밖에 있는 저수지에서 물을 지하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성 안으로 연못을 연결하는거예요. 이게 역사적으로 보면은 약 3000여년전에 이런 공사를 했다는게 대단한 것입니다. 지금도 보면 그거 혀를 둘러요. 북한이 뭐 땅굴을 잘팝니다만은 이건 이미 3500년전에 이런 일을 했다는거예요. 밖에서부터 굴을 파서 물을 끌어들이고 안에서부터 파나가서 지하에 중간에서 딱 만났어요. 사람이 걸어나닐 수 있는 크기의 수로를 받아서 그리로 물을 끌어들이니까 전쟁이 나도 물 때문에 걱정이 없어요. 안에 물이 쏟아지니까. 참 대단한 왕이에요. 이런 엄청난 일을 남긴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에요.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큰 승리를 주셨어요. 자 우리 오늘 성경 20절과 2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아멘.

이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이 성문을 열지 않고 안에 들어있으니까 이 전쟁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심리전을 펼칩니다. 안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믿는 여호와 헛 거다. 너희를 도울 힘이 없다.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비방해요. 그러면서 내가 많은 전쟁을 치뤘지만 아직까지 내 손에서 그 민중을 구원할 신들을 본적이 없다. 너희 여호와라고 별로 다르겠느냐. 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비방했어요. 얼마나 교만한지 몰라요. 

그러나 히스기야는 싸울 힘이 없었어요.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의 진영을 다 휘 흔들어 놨고 그들을 다 멸하였어요.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왕만 겨우 생명을 건지고 부끄럽게 도망가는데 낯이 뜨거울 정도로 그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는 앗수르에 돌아가서 자기 신전에 가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예배를 드리려고 그러는데 거기의 그의 아들들, 그가 낳은 자식들이 와서 이 전쟁을 일으켜서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패배하고 돌아온 자기 아버지를 칼로쳐서 죽여버려요. 교만하던 그는 결국 단칼에 생명을 잃고 만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하셨어요. 

히스기야에게 주신 이 영광과 승리,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것만이 아니에요. 또 그 사건이 여러 나라에 번져나가니까 많은 나라에서 사절들을 보내어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위대하신 분이냐 하면서 그걸 알기를 원했어요. 자 우리 22절과 23절 말씀을 또 읽습니다. "이와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로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와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그는 각국의 나라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어요. 하나님에게만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에게도 많은 보물을 가지고 왔다.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어요. 여러분 이런 은혜를 입은 히스기야가 어찌 교만하게 되었을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또 질병에서 하나님이 치료해주셨습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아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도 이적을 보이셨으나" 그가 죽어야 될 자리에 있는데 열왕기하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벽을 향해서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의 선한 것을 봐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눈물을 보십니다. 그리고 해시계를 뒤로 10도를 물러가게 하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주셨어요. 

세상에 이런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그에게 또 모든 재물과 영광과 모든 것을 다 부어 주셨어요. 그런데 문제가 여기 있는 거예요. 잘 될 때 건강할 때 부요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이 싹 틀 수 있다는 거예요. 바로 히스기야의 마음속에 교만이 침략해 들어왔어요. 이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돼요. 

여러분!! 교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내가 가로채는 것 이것 교만 아닙니까? 히스기야가 그랬어요. 바벨론이 사절들을 보내서 도대체 남왕국 유대의 땅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그런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는데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이냐? '당연히 여호와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을 데리고 자기의 왕궁 곡간들 성전 보물 창고들 군기고 군사들과 갑옷들 전쟁 무기가 있는 그런 무기고들을 다 보여주었어요. 바벨론에게 모든 정보를 다 넘겨줬어요. 자기 자랑하느라고! 결국 그것 때문에 얼마 후 남왕국 유대는 바벨론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패배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런 슬픔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자기 자랑만 늘어 놨어요.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눈에 벗어나는 기회가 된거예요. 교만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이루었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내 힘으로 내 경험으로 내 능력으로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이예요.

또한 교만이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 앗수르 산헤립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예요. 결국 이런 교만이 찾아 올 때 하나님의 눈을 벗어나게 되는 거예요. 교만한 마음이 드는 순간 보통 인간들은 감사를 잃어 버려요. 그게 교만의 특징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다 자기가 잘한 것이고 누가 도와 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사를 모르죠. 그래서 오늘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서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였다. 이 참 슬픈 이야기죠. 

오늘 2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아멘 이것 참 슬픈 이야기예요. 받은 은혜가 크면 당연히 보답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그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렸어요. 하나님께 은혜를 갚지 않았더라. 결국 그에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히스기야에게 진노를 내리셨다!!

시편 116편 12절에 보니까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 그 시인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그의 고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큰 기적을 체험하고 뭐 어마어마한 부자가 돼서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볼 때 이 전반기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고 하나님이 보호해주셨다면 그 또한 은혜요. 감사의 제목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감사할 줄 아는 거예요. 저는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요, 가장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 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 저희 교회 한 원로 권사님이 찾아 오셨어요. 여러분 잘 알다시피 그 아들 되는 안수집사님이 뇌의 종양 수술, 아주 어려운 수술을 잘 마치시고 집에서 회복 중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또 그 수술을 위해서 기도해주신 우리 교인들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내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내가 장학 헌금을 1 천만원을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1차분으로 먼저 500만원을 교회에 드립니다.' 하고 가져오셨어요. 그리고 '내가 준비해서 2차로 500만원을 장학 헌금으로 또 드리겠습니다.' 

자!! 여러분 수술할 때 생각하고 또 퇴원할 때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까? 아 그거야 뭐 좋은 병원에 갔으니까 좋은 것이지, 좋은 의사가 수술했으니 나은 것이지. 하나님이 뭐 도와주셨겠어? 이런 생각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권사님의 고백은 하나님이 수술해주셨어. 우리 교우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어! 내가 이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는 마음이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하며 가져오셨어요. 그렇다고 권사님의 가정이 그렇게 부자의 가정이 아니예요. 그저 근근히 살아가시는 가정인데 그렇게 많은 액수를 장학 헌금으로 드렸어요. 

또 몇 주 전에 한 권사님이 600만원을 가지고 오셨어요. 또 목회자를 만나기 원하셨어요. 그래서 권사님 뭣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제가 돈이 조금 생겼는데 제 생애에 이 헌금은 선교 헌금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600만원 중에 300만원은 교회의 선교비로 쓰시고 300만원은 미얀마 선교사님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아니 미얀마 선교사님 누구에게 보내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 권사님은 길에 나가서 일을 하십니다. 길에서 이것저것 팔고 신문도 파시고 이렇게 하시는데 하루는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시는데 미얀마에 대한 소개를 안성기가 나와서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미얀마의 생활 상을 보니까 너무 가난하고 너무 어려운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더라는 거예요. 나는 겨우겨우 살아가도 그래도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안하고 살아가는데 저분들 보니까 너무 힘들어요. 저 미얀마 사람들을 도와 줘야 겠다.!! 그러려면 선교사님을 후원하면 그 선교사님이 저들을 도울 것 아니냐? 그래서 그것을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얀마 선교사님을 찾아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총회 주소록을 찾아보니까 미얀마 선교사님은 없어요. 그래서 수소문을 했더니 성북 교회에 여자 선교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외국어 대학을 졸업하시고 NGO 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가 지금 미얀마에 가서 청소년 사역을 하고 계시는 여자 선교사님이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마침 한국에 나와 계시는 거예요. 연락을 해서 그 분을 모셔서 우리 수요예배에서 인사를 하고 사역 보고를 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그렇게 좋아해요. 전혀 생각도 안했는데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권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선교비를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보답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거예요. 사도행전 10장에 보니까 천사가 와서 고넬료에게 말합니다. '내 기도와 구제를 내가 기억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구제를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잘 되고 번성하고 건강할 때 감사할 줄 알아야지!! 감사를 잃어버리면 결국 그가 가지고 있는 것 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걷어 가시더라는 거예요.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농토가 많은데 한 번은 농사를 졌더니 너무 수확이 많아 가지고 이것을 쌓을 창고가 없어요. 그래서 창고를 더 크게 확장을 해서 그 양식을 쌓아 놓고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합니다. 이제 내가 마음대로 먹고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 때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밤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 생명을 거둬가면 그 모든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면서 뭐라고 합니까?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랬어요. 누가복음 12장 21절 말씀을 같이 읽어볼까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아멘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색한 자,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결과가 올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19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죠.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 해 쓸 물건을 모아 둔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거둬 가시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감사하지 못한 사람, 교만한 사람, 이 어리석은 부자의 종말을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교회 식당에서 권사님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감사 주일을 앞에 두고 감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랬더니 한 권사님이 그래요. '예전에는 집이 몇 채가 되었는데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층 집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을 전세 주고 그 전세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가 와서 돈을 꿔 달라고 해서 돈을 꿔 줬더니 아 그것을 한 푼도 못 받고 다 날려 버렸대요. 그래서 날릴 줄 알았으면 구제 좀 할 것을... 좋은 일 좀 할 걸... 남에게 좀 많이 베풀 것을...이러면서 그것이 가장 후회가 된대요. 다시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이제는 베풀고 나누며 살고 싶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 하세요. 자기 아는 친구가 있는데 교회 안 나오는 할머니에요. 그런데 경로당에서 만나면 맨날 통장을 가지고 온데 그 할머니가 집이 한 채 있는데 월세를 75만원을 받는데요. 그래서 통장을 가지고 와서 봐! 7만원 또 들어왔잖아. 아들이 용돈 30만원 또 보냈네? 맨날 자랑만 하는거야. 라면도 한끼 안사주면서 더워도 아스크림도 하나 사는 법이 없데 얼마나 인색한지 자랑만하고 통장에 돈 들어가는 거 자랑만하고 그러더니 경로당에 안나와가지고 그 할머니 어디갔어 이랬더니 누가 그래요. 어제 밤에 돌아가셨데요. 통장에 돈 쌓이는거 자랑하고 다녔는데 남한테 한번 베풀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셨어요. 그 분은 예수도 믿지 않고 돌아가셨어요.

여러분 이것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 아닙니까? 자기를 위해 여러해 동안 쓸 물건을 쌓아두었지만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둬가심에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이게 답답해요. 자. 여러분 히스기야가 하나님이 진노를 내리시고자 했을 때 그가 교만함을 뉘우치죠.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아멘.

뒤늦게나마 히스기야가 뉘우쳤어요. 그런데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이런 재앙이 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의 교만함을 보시고 결심하신 바가 있어요. 히스기야의 아들이 므낫세인데 므낫세는 남왕국 유다의 역사 중에 가장 못되고 악한 왕이었어요. 므낫세 시대부터 우상을 숭배해서 나라가 기울어졌어요. 그래서 몇 대를 가지 못하고 바벨론에 의해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20장 16절 이하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예언을 전하십니다. 16절에서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아멘.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히스기야에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데 당신이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랑했던 그 모든 왕궁과 이 무기고와 이 모든 보화들이 바벨론의 창고에 쌓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에서 난 아들이 바벨론 왕국의 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드라마 보면 환관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죠?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시녀들처럼 시중을 드는 사람을 환관이라고 합니다. 

왕자가 되야 할 사람이 왕이 되야 할 사람이 남의 나라의 환관으로 전락해버리는 거 이것은 비극이에요. 바로 히스기야의 교만이 그의 후손가운데 이런 비참한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은혜 그 이후 라고 정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 입니까? 은혜 받은 사람들이 은혜 이후 어떻게 살 것이냐? 이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은 이후에 교만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고 실수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섰다고 이야기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 성공할 때 잘될 때 좋은 직장 들어갔을 때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다윗왕도 마찬가지에요. 다윗 왕도 교만할 때가 있었어요. 남북 다 통일해버리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나라가 안정되고 국위를 선양할 때 그의 마음에 자만심이 들었어요. 그는 백성의 숫자를 개수해서 자기의 세력을 자랑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큰 죄악이 되었어요. 또 그는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의 아내로 빼앗아버렸어요. 그리고 우리야를 적진 깊숙이 넣어서 죽게 만들었어요. 다윗은 그 일로 큰 고통을 당합니다. 결국 자기 자식이 아버지를 향해서 반역을 일으키게 되고 그 압살롬이 가족에 풍지평파를 일으키죠. 다윗이 교만할 때 온 결과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가르고 건넌 위대한 지도자 모세. 그러나 그도 교만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어요. 백성들이 자꾸 불평하고 원망하니까 화가 났어요. 샘물을 내야하는데 반석을 한번 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로 두 번을 쳤기 때문에 그는 교만했어요. 하나님이 결국은 어떤 벌을 내리십니까? 가난안 따엥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왕도 마찬가지에요.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주었건만 죽을 병에서 살려 주었건만 그가 교만해서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은 결과가 후손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 겸손을 배우시고 감사를 실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어요. 교만한 사람이 감사한다는 것은 본적이 없어요. 자기가 잘났는데 뭐 감사할 것이 있어요. 다 자기 힘으로 잘되고 출세 했는데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릎을 꿇는 거예요. 

엔드류 머레이라는 신앙의 선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간구와 신앙 훈련의 목표는 겸손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하고 겸손한 사람이 은혜를 깨닫는 거예요. 사랑하는 영신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성공할 때 잘될 때 그리고 높아질 때 더 낮아지시고 겸손해 지시고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젠가 글을 읽다보니까 양병희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서울 영안교회 이야기가 책에 실렸어요. 그 교회 한 여성도님이 성대가로 봉사하시는 분인데 혀에 암이 생겼어요. 그것을 설암이라고 하는데 혀 전체가 암이 퍼져서 혀를 절단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 어려운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혀를 수술하게 되면 그는 평생 아무 말도 못하고 찬양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요. 살아야 하니까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가족들이 모여서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 여 성도님이 내가 수술을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찬양을 하고 싶다고 해서 찬양을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찬송가 314장을 찬양하는 거예요. 

2절에 보니까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찬양을 하는 거예요. 누워서.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겠대요.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제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게 하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려요.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이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해도 부족한데 어떻게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 그것을 보는 순간 가족들이 눈물 바다가 되었어요. 너무 안타까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평안한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수술을 막 시작하려고 혀를 봤는데 뭔가 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 보였어요. 그래서 수술을 하려다가 잠깐 멈추고 다시한번 정밀 검사를 해보고 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처음에 정밀 검사를 했을 때는 혀 전체에 암이 퍼져서 혀를 끝에까지 절단해야 하는데 지금 보니까 암 덩어리가 혀끝으로 다 몰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 절단할 필요가 없고 끝에만 조금 절단하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혀 끝만 절단해 버리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그 이후 성가대도 열심히 하고 얼마나 전도를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여러분 정말 그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베풀어주세요. 여러분 우리가 성공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했을 때도 감사해야 해요. 건강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에요. 병들었을 때도 감사해야 해요. 부요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난할 때도 감사해야 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어떤 처지를 당하던지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기적의 주인공들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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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this attitude in yourselves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who, although He existed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a thing to be grasped, but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bond-servant, and being made in the likeness of men.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by becoming obedient to the point of death, even death on a cross. For this reason also, God highly exalted Him, and bestowed on Him the name which is above every name, so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WILL BOW, of those who are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that every tongue will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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