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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지금 몇 시인가?

- 위기의 계절로 접어든 한국교회의 대안


지금 한국 교회는 어느 계절인가?

신년에는 새해 아침을 맞는 느낌으로 밝게 해야 어울리는 것 같아서 제목을 '희망찬 새해 아침' 정도로 하면 좋겠지만, 겨울밤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는 어두운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지금 몇 시인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1970년부터 1980년대는 한국 기독교가 무섭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교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늘날 서울에 있는 세계적인 대형 교회들이 다 그때 세워지고 큰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의 사역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이러한 경험을 우리도 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있을까?

그러나 그때는 현대화가 극적으로 성공한 한강의 기적이 있던 현장이었고, 마침 서구화한 기독교회가 산업화의 수혜자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현대화의 물결에 편승했던 좋았던 그때 그 시절이 또 재현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만큼 어리석다. 쌀가게 하고 철공소 하다가 현대 기업을 이룬 정주영 씨 같은 분이 21세기에 또다시 나타나기 어렵듯, 70년대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이 재현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는 서로 갈 길이 다른데 아직도 옛 시대의 부흥이 교회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장년 교인들은 대다수 70년대와 80년대의 교회에서 자랐고 선배들의 부흥 스토리를 들으며 자랐다. 나는 가끔 내가 30년 일찍 태어나 70년대에 안수를 받았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한국은 부흥의 시기였고, 미국도 교회만 세우면 성도들이 모이던 시기였다. 교회 수는 부족하고 성도들의 기도는 뜨거웠다. 이런 시기에 목회를 하는 목사는 행복했을 것이고, 성도들도 속속 맺히는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믿음이 자라던 여름 행사들이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성경 학교와 전도 모임. 뜨거운 여름같이 무엇이든 왕성한 시기였다.

어쩌면 지난 세대의 기독교 성장은 과거 200년간 박해 속에 죽어 간 천주교 신자들과, 일제의 박해와 한국전쟁 가운데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보낸 모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사에는 때가 있다.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되었다. 물론 좋은 교회의 수는 아직 적다 할 수 있지만 교회의 수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목회자와 교회의 질은 떨어졌다. 교회에 다녀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아, 교회가 주는 신비함도 없고 부끄러움도 드러났다. 성도의 수는 줄었지만 대신 교회 별 것이 없다고 느낀 안티 기독교인이 늘어났다. 건물은 화려해졌지만 영향력은 초라해졌다. 많은 공부를 한 유학생들, 박사들은 많아졌지만, 성도의 삶은 그리 깊어진 것 같지 않다. 봄날은 갔다. 여름과 가을이 가고 기독교의 겨울이 왔다.


한국교회는 병들었는가?

약간 주춤할 뿐 겨울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이 나올 수 없고, 진단이 저마다 다르면 마음을 합하기 어렵다. 과연 한국 기독교는 감기에 걸렸는가, 병들었는가?

우리는 어떨 때 어느 조직이 병들었다, 썩었다고 진단하는가? 병원 조직의 예를 들자. 병원이 썩었다고 말할 때, 환자의 살이 썩었거나 환자가 병에 걸린 것을 말하지 않는다. 병원의 원장이 되기 위해서 암투가 벌어지고, 의사들은 서로 환자의 안위보다는 몸보신하고, 실적을 올리기에만 급급하여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이용해서 필요 없는 수술을 감행하고, 터무니없는 의료비를 청구할 때, 의약품을 하나 쓰는 데도 검은 돈이 오고 가고, 병원의 청소부를 뽑을 때에도 연줄이 없으면 되지 않는 병원을 볼 때, 우리는 그 조직이 부패했다고 말한다.

한국교회에 신실한 기도의 사람들이 있고, 새벽이슬 같은 순순한 젊은이들의 헌신과 풍성한 신학생들의 개혁 정신이 살아 있으며, 건전한 교회가 곳곳에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과 교회 전체의 방향을 바꾸려는 바람직한 교회 어른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병들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개인이 병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구조가 병들어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부패와 벗 삼고 있으며, 말씀으로가 아닌 미신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하나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마케팅과 전략으로 목회하고, 겸손과 섬김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위협과 협박으로 믿음의 길을 오도하는 목회자들의 여전한 모습을 보면 교회가 이미 큰 병에 들었다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아직 건강한 사람이 많이 있으므로 희망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병들어야 제대로 병든 것인가? 아직 50%는 건강하다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80% 건강한 것은 건강한 게 아니다. 몸의 5%만 썩었어도 생명이 크게 위태로운 것을 왜 모르나? 희망은 병을 덮어 둘 때 생기지 않는다. 병든 사람을 병들었다고 진단하고 고치기 시작해야 희망이 있다.

나는 25년째 예수를  믿어 왔다. 한국에서 청년부 간사부터 시작해서 7년을 사역하고 신학하고 목사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공부하고 한인 교회를 섬기고 미국 교회와 비교했으며 개척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의 판단이 성급하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진단을 미뤄 왔지만, 이제는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확실히 한국교회는 병들었고, 계절로 치면 겨울에 접어든 지 오래다.

한국교회에 세 차례의 수적인 감소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와 지금이 바로 그것이다. 앞의 둘은 일제와 공산당이 준 외부의 핍박에서 기인한 고생이었지만, 지금의 것은 우리 스스로 부패하고 범죄해서 받는 고난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마저 우리의 잘못과 죄, 오만과 무지의 탓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 같아 아쉽다. 외부의 핍박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병으로 이 같은 문제가 생겼으니, 면목이 없다.


병든 교회에 희망은 있는가?

한국교회에 희망은 있는가? 희망은 있지만 과거 화려한 여름 같은 부흥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동일하다. 그러나 교회가 돌이키는 과정이 우리 생각처럼 쉽고 짧은 기간에 끝날까?

이스라엘이 범죄하자 70년을 바빌론에 포로로 보내신다. 당시에도 선지자들은 곧 돌아온다, 희망은 있다고 말했지만 성경을 이들을 거짓 선지자로 규정한다. 예레미야는 대 놓고 바벨론에 가거든 땅을 사고 집을 지으라 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이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을 예언했고 그대로 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짓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지만, 다시 범죄한 이후 무려 400년간의 침묵기가 이어진다. 그동안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받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313년 기독교가 허용되기까지 무려 200년 이상 소외되고 박해당했다. 중세 기독교에는 1,000년간 그 암흑이 계속되었다. 교회사에 빛나는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유럽 교회는 19세기 이후에는 거의 100년 이상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교회는 선교사들이 오래전부터 힘을 쏟아서 한국에 복음을 전하는 등 선교적 가능성이 큰 지역이었지만, 무신론 공산 정부 수립 이후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무려 40년 동안 지하에 숨어서 믿음을 유지해야 했다. 이렇듯 성경과 역사는 한 번 범죄하고 병든 교회가 심판을 받고 회복되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말해 준다.

한국 기독교의 잘못으로 인해 침체기가 오고, 회복되기까지 적어도 100년은 어둠의 세월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까무러칠 것이다. 줄여서 50년 정도 침체가 지속될 것 같다고만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만 적용하지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와 심판이 우리에게 해당할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도 범죄하면 막대기로 징계하셔서 고치시는 분이신데, 하물며 한국교회가 정결케 되도록 연단하시지 않겠는가?

확실히 영적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몸을 녹이며 추운 겨울을 버티며 봄까지 살아남을까 걱정해야 할 때다. 과거처럼 건축하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행사를 열면 미어터지고, 집회마다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은혜를 체험하고, 은혜를 받아 다 변하고 하는 식으로 옛날 좋았던 시절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병든 상처를 치유하고 회개하며 풍성한 은혜의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릴 때다. 이것이 범죄하여 벌 받는 교회가 취할 마땅한 자세다.

예수님이 태어나던 시기, 예루살렘에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구원이 오기까지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 보자.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들

예수님이 태어난 지 팔 일째 되는 날 요셉은 아이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할례를 받게 한다. 이때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린 예수를 안은 선지자들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수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다. 모세의 법대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차서, 그들은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것은 주님의 율법에 기록된 바 '어머니의 태를 처음 여는 사내아이마다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한 대로 한 것이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야 한다' 한 대로, 희생 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눅 2:21-23)

첫 번째 사람은 경건한 시므온 할아버지였다.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령이 충만하여 메시아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던 그는 마침내 그날 성전에 들렀다가 마침 어린 그리스도를 만나 자기 팔에 안는 감격을 누렸다. 찬양하며 예언하고 마리아에게 아이에 대해 일러 주었다. 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눅 21:25-35)

두 번째 사람은 안나 할머니다. 그녀는 일찍 과부가 된 뒤 성전에 살며 기도하던 선지자다. 그도 이내 예수님이 기다리던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았다,.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 왔다. 바로 이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눅 21:36-39)

이들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가장 추운 계절을 지나던 사람이다. 400년간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 왔다. 정치적·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은 혼란스러웠고, 더없이 약해졌다. 바리새인은 열심은 있었지만 율법주의로 흘렀고, 사두개인은 소망을 잃었다. 서기관과 제사장들도 무감각해졌다. 열심당원은 자기 힘으로 해 보려고 했고, 엣센파는 세상을 등졌다. 이런 혼란한 겨울에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시므온은 의롭게 되기 힘썼다. 경건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위로를 기다렸다. 성령의 지배를 받았고, 될 수 있는 대로 성전을 가까이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안나도 50년 이상 홀로 살면서 경건한 과부로, 이스라엘의 여선지자로 소명을 다했다. 밤낮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그 성전에서 예수님 가족을 보았다.

이들의 기도와 경건은 평상시가 아니라 교회의 겨울, 교회의 침체기, 영적인 혼란기, 기다림의 시기임을 기억하라. 이들이 침체기를 맞는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시므온, 안나,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갸랴 내외의 좋은 예는 집단의 영적 침체기에도 개인은 얼마든지 경건하고 의롭고 충만하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지 증거가 된다.


영적인 겨울을 나는 법

한국교회의 침체기가 100년이 지속되어도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40년보다 짧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30년 정도만 벌 받고, 회개하고 새롭게 되어 30년 뒤에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하나님의 진노가 앞으로 30년 만에 그치고 30년 뒤에 위로가 내린다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대부분의 장년이 은퇴할 무렵에야 예전 같은 영광이 찾아올 것이라는 계산이다. 목사인 나는 은퇴할 70살까지는 좋은 시절을 맞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침체기에 목사가 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필 침체기에 교회의 식구가 되어 섬기는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나? 겨울을 나는 교회의 십계명이랄까, 대안을 생각해 보자.


교회가 할 일

1. 각성 - 침체가 3년 뒤에 끝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라. 얼른 회개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가 더 길어질 뿐이다.

2. 회개 - 먼저 회개해야 한다. 잘못은 고쳐 주고, 위로에 합당한 열매를 맺자. 우리 지체가 병들었으면 병든 삶과 행동을 벗고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돕자. 고칠 수 있으면 고쳐 주자.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았지만, 나중에 옳았음이 밝혀졌다. 이런 선지차가 되어 한국교회의 병들었음을 알리고 회개를 촉구하자. <담대하게 말하고 겸손하게 침묵하라>는 책처럼 겸손히 개혁을 외칠 때다.

3. 변화 - 예전과 같은 신앙의 부흥을 기대하지 말고, 침체기에 맞는 교회의 일을 찾아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라. 한국교회에 거의 처음 맞는 침체기이므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역사를 통해 성경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4. 공동체 - 교회는 행정이나 건물, 프로그램이 아니라, 믿음과 하나님과 사람과의 돈독한 관계로 굳게 유지되는 신앙 공동체로 변해야 한다. 정부의 통제나 간섭, 경기 침체의 변화에도 영향 받지 않고 살아남는 생명체적인 구조를 갖춰야 한다.


개인이 할 일

5. 절대 신앙 - 순교자들의 믿음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외형적인 것을 다 제하고라도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만이 끝까지 남게 될 것이다.

6. 소명 - 장기전으로 들어갈 준비하자. 30년이면 짧은 세월이 아니다. 여름날에 세운 개인의 야망과 진로를 겨울철에 맞게 수정하고, 침체기에 주어지는 새로운 소명을 찾아내고 각자 은사대로 할 일을 찾자.

7. 인내 - 믿음으로 인내하며 경건의 싸움을 끝까지 싸우라. 위로가 올 때까지 경건의 훈련을 계속하자. 참 지루한 일이겠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시므온처럼, 안나처럼 믿음으로 경건하게 버티면 주님의 위로를 끝내 보게 된다.

8. 전파 - 소망이 있다. 이 침체기는 분명히 지나고 위로가 임할 것이다. 위로를 기다리는 동료들을 많이 만들자. 침체기에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녀들에게 이 위로의 신앙을 전해 주자.

9. 전달 - 30년 뒤에 우리 자녀 세대들이 변절하지 않고 다시 영적인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고 유산을 물려주자. 그들도 버텨 내게 하고, 다시 부흥할 역량을 길러 주어야 한다.

10. 감사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찬양하라. 기독교가 침체하고 교회의 수가 줄어도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외부의 영향을 통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실 것을 감사하라. 알곡만 남기고 쭉정이를 가려내는 작업을 통해 교회는 교회답게, 신자는 신자답게 될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주님의 계절임을 몸으로 배워 고백하는 계기로 삼으라.


이런 것이 침체기를 맞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숙제다. 시므온처럼 안나처럼 의롭고 경건하게 한국교회를 향한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 도래함을 찬양하는 그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다.


- 김범수 목사(시애틀 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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