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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의 노래


- Martin Zamel


이사야서 12:1-6
골로새서 3:12-17
마태복음서 11:25-30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을 허락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절 후 네 번째 주일이 되는 오늘을"칸타테"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찬양"의 주일입니다. 오늘은 바로 문자 그대로 노래하도록 초대되는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이며, 함께 교독한 시편 98편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로 주님께 찬양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꼭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된 찬송이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찬양한다는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그런 찬송이 더 좋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래는 새 노래입니다. 왜냐하면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가사와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래는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또 그 노래가 불러지는 시간과 상황에 의하여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노래든 새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늘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노래라도 늘 새로운 노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상황가운데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노래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러한 노래에 속하는 것으로써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요한의 비전을 듣습니다. 

요한 계시록 15, 2-4 (표준 새번역)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 본문에서 굉장히 특별하고 의미심장한 그림을 떠올리게 됩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을 보게 되고,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짐승 우상과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기이한 모습을 담고 있는 본문 아닌가요? 저자 요한은 무슨 내용을 전하고자 하였을까요? 저자가 이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당시의 사람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 잡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서기 90/96년 경 살았던 당시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의 증오를 감당해야 했으며, 로마제국의 황제를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떠받들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인정사정 보아주지 않고 심한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 세상을 두려움과 경악스러움으로 빠져들게 하는 혐오스런 모습의 성난 동물의 모습의 신화적 그림들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저자는 그 시대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그림을 통하여 그는 잔인한 사건들과 투쟁들에 의하여 각인된 종말적 시점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끝자리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분이 승리자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 바닷가에 서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 안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모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모세는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입니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파라오 군대를 피해 도망가는데,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하여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을 기념하며 부르던 찬양의 노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을 노래한다는 것은 곧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셨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찬양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부활과 승천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이러한 노래로 요한계시록 저자 요한은 박해 당하고, 순교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삶을 향한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는 노래를 택하였습니다. 이성적으로 말할 수 없게 하는 것도 노래로는 아주 잘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소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도 또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건져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노래하라! 노래하라! 노래하라! 노래로써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여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전혀 노래할 줄 모르는데? 혹은 난 완전 음치야! 그러나 그것이 결코 문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러한 노래들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는 여러분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곡예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노쇠하여 질 때까지 춤추며 뛰놀며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마침내 그는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들고 한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동안에 뛰놀며, 춤추면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 곡예사는 기도를 할 줄도 몰랐고 시편을 노래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책들에서 인용된 기도문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고 미사 시간에는 성가대석에서 모두 훌륭하게 찬양을 부르는데, 그는 창피해 하면서 같이 서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단지 그 사람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 여기서 지금 뭐하는 거냐"하고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기도할 줄도 모르고, 경건하게 말할 줄도 모르고 노래도 못하는데. 난 여기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고, 내가 입고 있는 이 수도복에 전혀 걸맞지 못한 가치 없는 존재이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그는 어느 날 미사의 기도시간 종이 울릴 때 멀리 떨어진 작은 예배처소로 혼자 도망을 쳤습니다."내가 수도원에서 함께 노래할 수 없다면, 내가 지금까지 배워 왔던 것이나 해야겠다."면서 그는 재빨리 수도복을 벗어버리고, 이전에 곡예사로 살던 시절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때 입었던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멀리서 시편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그는 온 맘과 열정을 다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앞으로 뒤로, 왼쪽으로 오른 쪽으로 돌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때로는 그 예배당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듯 춤을 추기도 하면서 온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그는 끊임없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숨이 차서 더 이상 춤출 수 없게 되자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수사가 그 사람 뒤를 몰래 쫓아와서 창문 틈으로 그가 춤추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수도원 원장을 불러왔습니다. 다음 날 수도원 원장은 그 곡예사를 불렀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겁먹고 수도원장 앞에 불려 나온 곡예사는 기도 시간에 참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아마도 벌을 받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장 앞에 무릎 꿇어 앉아 말하였습니다. "예, 원장님, 이제 제가 여기 더 머물 수 없고 떠나야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거저 받은 옷들도 다 돌려 드리고 다시 거리로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수도원장이 그를 끌어안고 수도원장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수사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당신의 춤으로 당신은 하나님을 온 맘과 뜻을 다해 열정적으로 찬양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기도와 찬송을 모두 뛰어 넘는 훌륭한 찬양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의 그럴싸했던 모든 입술의 말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빌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후버투스 할프파스의"기도하는 곡예사"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이지요. 그리고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에서 우리가 그 음정을 맞추고, 우리의 노래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이 곡예사는 전혀 노래하지 못하는 음치였습니다. 그는 전혀 음을 내지도 못했고 기도할 때는 완전히 버벅거리기만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람은 성경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며, 신앙에 대해서나 신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장은 그를 칭찬했고 다른 수사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조차도 가장 모범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들어 세운 것입니다. 

화음이 아름답거나 음색이 좋은 것보다 더 다른 그 무엇인가가 찬양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아주 분명하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찬양하는 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보통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춤추고, 뛰어 오르는 것,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좋은 재주를 잘 보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갖고 나왔습니다. 감격하면서, 열정적으로, 온 몸과 온 맘을 다해서 말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묻고자 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자세는 어떠한가 말입니다. 노래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내면 깊이로 부터 찬양하고, 우리의 영혼 깊숙이 로부터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말입니다. 이 곡예사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한 것처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에게 기쁨이요, 또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처럼 우리도 찬양합시다.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합시다. 요한은 희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가 노래로부터 나오는 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힘이라는 것이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려서 적절한 말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두려움의 상황에서 찬양은 우리에게 더욱 희망과 용기를 전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희망의 노래와 찬양을 부르십시다. 그리고 요한의 확신과 비전을 우리 것으로 삼고 우리도 미래를 향하여 찬양 부릅시다. 두려움과 고뇌가 모두 사라지게 될 그 미래를 향하여 말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새로운 노래를 부릅시다. 승리자의 노랫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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