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공적인 제자로 살기

2017.10.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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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선언'이 발표됐다. 필자는 다른 발기인들과 함께 복음주의가 근래 들어 정치적 행동주의(시위·항의집회 등에 집착하는 경향)와 너무 가깝게 밀착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 점을 크게 염려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복음주의 선언'을 열정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대 초 필자는 '복음주의 사회 관심 시카고 선언' 발기인으로 참석했었다. 필자의 첫 책인 '정치적 복음 전도'는 전도와 정치 행동의 통합을 주장한다. 또 사역 초반에 상당 기간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사회봉사 전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경력을 부인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적극 행동에 관한 예전의 주장에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보충하고 싶다. 공적 행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학적, 영적으로 바른 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제리 폴웰도 한때는 사회문제에 관한 마틴 루터 킹의 발언들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설교자는 정치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에서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그는 그 비평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했다. 

폴웰의 그런 심경 변화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변화를 가져온 신학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다른 교회관을 지지하게 되었는가. 그리스도와 문화에 관한 그의 신학이 바뀌었는가. 진정한 교회는 거대 문화 속의 식견 있는 소수라고 생각하며 분리주의적 복음을 설교하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른바 '도덕적 다수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게 되었는가. 종교적 보수파의 결점들은 주로 사려 깊은 신학적 성찰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신학적인 실수뿐만 아니라 영적인 잘못도 있다. 필자가 복음주의자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구절은 베드로전서 3장 15절이다.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다음 문구는 보통 생략된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지금까지 복음주의자들은 정치적 사안들을 다룰 때 '온유'나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투쟁 정신으로 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는 공적(公的) 제자 살기의 영성을 계발하지 못한 탓이다. 

또 하나 우려하는 점은 각 개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도록 권유하는 전도 사역이 다른 일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2년 전 빌 하이벨스가 윌로크릭교회 사역의 부족한 부분들을 고백하면서 이 점을 언급했다. 그들은 연중 사역의 25%를 전도 사역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연말에 가보니 전도는 다른 목표들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었다. 전도는 치밀한 계획하에 추진해야 한다는 게 거기서 배운 교훈이라고 빌 하이벨스는 말했다. 

전도를 여러 사역 가운데 하나로 단순하게 취급한다면 본연의 자리를 잃을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도는 지나치게 소홀히 취급될 것이다. 난 아직도 사회행동가임을 자처한다. 공의, 평화, 의를 위해 일하는 것은 제자 살기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부지런히 추구하되 또한 보다 큰 그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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