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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생활연구소

설교자의 인격에 관하여

2017.10.12 21:42

관리자 조회 수:0



   


   설교의 두 번째 요소인 설교자의  인격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특별히 다음 강의에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기본적인 사실을 두 세 가지만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개성을 지켜라
   첫번째 사실은 이것입니다. 일단 인격의 원칙을 인정하면 각 설교자의 개성을 또
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들 때문에 복음을  하늘에 기
록하거나 거의 비인격적인 책에만 그저 맡겨서는 안 되고 또한  설교자는 누구나 자
기 방식대로, 자신의 성품을 따라서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 되
는 것입니다.

   진리는 한 사람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와야 합니다. 사람
들을 획일화시킨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인력을 크게 잃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아무도 생각하는 사
람이 없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구 전체가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움직일 때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목회의 엄숙함을 깊이 의식하다보면 종종 설교자의 자유로운  개성을 억압하거나
다른 설교자의 개성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식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그에게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인  것입니다. 양심이
철저히 깨어있을 때는 취향보다 더 엄격해집니다.
   양심이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처럼 엄숙한 일에 자신의
특성을 억지로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매우  능력 있는
말씀의 설교자들이 따랐던 목회 방식들만을 따르려고 합니다.

   저는 이 두 경우에 해당하는 목회자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즉  양심 때문에 완고
해진 목회자를 보았고, 또 양심 때문에 오히려 융통성이 있게 된 목회자들도 보았습
니다. 양심으로 인해 사람이 더욱 굳어진 경우도 있고 더욱 부드러워진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따라 전하는 진리
   하지만 설교자의 개성을 억압하는 경향은  분명히 있고 또 나타납니다.  이 점은
하찮은 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입는 제복과 설교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획일적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요한 사실에서도 볼 수 있습니
다.
   어느 시대든 진리의 선 안쪽에 정통 교리의 선을 긋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그 점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런 영향에 물들지 않도록 정신차려서  지혜롭게 행동
하도록 합시다. 사람들 가운데서 성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사람을  보내신 하
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통해 독특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신 것입니
다.

   여러분은 있는 힘을 다해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얄팍한
특성이나 기벽을 개발하여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
음과 사랑으로 가득 찬 참된 자아를 얻음으로써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십시오.

   엄숙함 vs 자유로운 개성
   깊은 독창성은 고귀하지만 얄팍한 독창성은 초라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되는 것
은 쉬운 일입니다. 광야와 낙타 털옷과 메뚜기와 석청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말씀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헌신된 마음과 말로만 불같이 이야기하
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하는 이야기지만, 설교자의 개성을 생각할 때 설교자는 다른 사람들은
어쩌다 한번쯤 하는, 그래서 드물게 생각하기 때문에 신성하게 여기게  되는 생각이
나 말을 늘상 하며 지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설교자의 생애가 끼친 영향을 평가하려고  할 때는 항시 이 점을  고려해야 합니
다. 그 사실이 갖는 힘이 어떤  것입니까? 저는 그 사실 때문에  목회자가 약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랜 시간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이따금씩 한 번
설교하러 온다면 현실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불같이 설교할 텐데  신성한 일에 항시
접촉하고 있는 까닭에 거룩한 것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이들은 항시 진리를 대하고 있는 까닭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
는 것이 더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항시 물이 흐르고 있는 관에 찌꺼기가 끼
어 물이 잘 흐르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외에도, 그 점은 자기 기만을 부추기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고 왜곡하게
만듭니다. 끊임없이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경험을 해보라고
강권하는 사람도 어느 때가 되면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바로 그 경험의  힘에 의해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에서 잘못을 볼 때마다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
분 교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은 확실히 좋은 규칙입니다.

   가보지 않은 행선지의 익숙함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하다 보면 회개의 교리에 아주 익숙해져서 자신
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가 어렵게 됩니다. 인내하라고 권하다  보면 자신의
성급함을 볼 줄도 들을 줄도 모르게까지 됩니다.

   그것은 철도역에서 기차를 출발시키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승객들에게 늘 행선
지를 소리쳐 알리고, 승객들에게 수년 동안 여러 도시의 표를 팔다 보면, 어느 때에
는 정작 자신은 한번도 그 작은 간이역을 떠나 본 적이 없으면서도 마치  그 도시들
을 전부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식입니다.

   이 모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잘못은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진리에 덜 익숙해지는 것이 그 치료책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설교
에 좀더 참되게 접근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관계에서는 설교를 늘상 한다고 해서
설교에 대한 현실성과 열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강권하면  할수록 여러분 마음속에서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굶주림과 목마름은 그만큼 더 강렬해질 수가 있습니다. 무시할만한 물건이
나 무시당할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익숙하다고 해서 무시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영웅일지라도 늘상 같이 지내는 시종에게는 여느 사람과 같다는 격언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여느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그 시종에  대해서 뿐이라고 답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익숙하게 하고 있는 일에서 고무를  받고 기쁨을
얻어야 하며 여러분 삶의 신성성을 더욱 느껴야 합니다.

   설교하는 일에 익숙함 때문에 여러분의 능력이 활력을 얻고 발휘되기보다는 쇠약
해지고 무디어진다면 여러분은 설교자로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
분이 목회를 주님과 주님의 백성을 위해서 하느냐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하
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일하면 여러분은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며, 주님과 주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하면 더욱 더 생명을 주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