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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생활연구소

설교자가 메신저라는 의미

2017.10.12 21:44

관리자 조회 수:0



   



   목회를 하면서 여러분은 목회자의 직무를 달리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자신을 메신
저로 생각하는 이 근본적인 개념만큼은 절대로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이 개념을 아주 잘 간직할 수 있을 방법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해
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와 그리스도 진리의 절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강좌
를 시작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폭의 특성
   여기서 폭이라고 말했지만 너무 넓은 분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설교를 메시지로
보는 이 개념에 대해 제게 늘  인상깊게 남아 있는 한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오늘날 매우 부족해 보이는 것을 설교에 보충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폭이라는 특성입니다. 저는 지금 생각의 자유로움이라든지, 다른 사
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포용력, 혹은 그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마
음을 넓게 쓰고 위대한 진리를  위대하게 전하며 중요한 직무를  강력하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찮은 주제들, 이를테면, 영혼의 생명에 부차적인 것들, 자잘한 해
석학적 문제들이나 케케묵은 신학 문제 같은 것들을 시시콜콜 난해하고 교묘하게 다
루는 것이 아닙니다.

   토요일에 대도시 목회자들이 다음날 설교하기로 정한 주제들의  목록을 살펴보십
시오. 이 주제들 가운데 설교자들이 성경의 묘한 구석에서 주제 거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많으며, 교인들이 앞에 차려진 식탁에서 얻어 가는 진리가 얼마
나 하찮고 기괴한 것들인지 한 번 보십시오. 그 다음에  배로우(Barrow)나 틸로트슨
(Tillotson), 부쉬넬(Bushnell)의 설교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되자", "하나님만 사람의 행복이시다",  "하나님은 모
든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신다"는 설교 제목들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세밀화가 있는
가 하면 프레스코화의 걸작이 있습니다. 이 종류의 그림은 이 주제에 맞고, 저 종류
의 그림은 저 주제에 맞습니다.

   설교자는 누구나 묘한 본문에 이상한 매력을 느끼는 묘한 시기를 거치며, 대부분
의 사람들은 2분이면 할 말이 다 떨어질 수 있는 하찮은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싶은 때라든지, 힘보다는 정교함에, 진리보다는 독창
성에 더 열을 올리는 기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설교를 메시지로 이해하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짐에 따라 이러한
가시덤불을 피하여 탁 트인 땅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의 사역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더욱 담대해지며 더욱 넓어집니다. 설교자는 단순한 본문을 좋아하고,  강물처럼 모
든 생명을 꿰뚫어 흐르는 위대한 진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든지,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든지, 성령 안에서 갖는 소망, 의무의 특권, 구주  안에서 사람
을 사랑하는 것, 이런 것이 그의 영혼이 붙잡으려고 하는 감동적인 음악이 됩니다.

   역사성의 특성
   그 다음에 설교를 메시지로 인식하는 데서 오는 또 한 가지 결과는  그 인식으로
인해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모든 기독교 신앙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입
니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비로소 처음 말하는 것처럼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
은 교회가 대대로 이야기해온 바로 그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전하
는 사람은 과거에 그 메시지를 전한 모든 무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
지는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증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가 그 메시지를 받을  때 가
졌던 확신은 한편 그 메시지가 처음부터 내려온 동일한 메시지라는 사실에서 나오기
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집단적인 개념과 개인적인 개념 사이에서 바른 태도
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발견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 두 가지 면을 다 필요로 할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교회의 정체성은 교회가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전해
온 메시지의 정체성에 있습니다. 교회의 영속적인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가
바로 이 참된 정체성을 주장할 때에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만이 옛 의식들
이 영속적으로 보존되고, 고대 전례들이 사용되며, 사도 시대의 정치 형태로 보이는
것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단자라고 언제든지 그런 면에서 잘못을 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
다 이단자는 그의 판단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자의적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
람은 진리에서 이단자가 될 수  있다"고 밀턴은 말합니다. 이단자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로 여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
대로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교회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설교를 메시지 전하는 것으로 여기면 여길수록 옷차림이 다르고
말이 다를지라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모든 사람과 더욱 더  한 형제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