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마음 공동체

선교회 연구소 사역회 연합회 성경대학 영상미디어 상담소 네트워크 교회 애플밸리교회 주일설교
애플밸리 빅토빌 필랜 바스토 헤스페리아
빅토빌, 빅터빌, 빅토밸리, 빅터밸리, 하이데저트, 교회, 복음, 믿음, 소망, 사랑, 십자가, 목사, 김성일, 애플밸리, 헤스페리아, 히스페리아, 필랜, 필란, 필렌, 학교, 코로나, 코비드,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카운티, 산불, 폭염, 건강, 취업, 빅토벨리, 빅터벨리, 은행, 호텔, 모텔, 여행, 교단, 장로교회, 장로, 집사, 권사, 새신자, victorville, Hesperia, Apple Valley, Victor Valley, High Desert, Church, School, Covid, Corona, Virus, Pastor, Phelan, San Bernardino, County, Godspel, Korean Church, 한인교회, 한인, 영생, 구원, 부활, Adelanto, College, Youth, Group, Activity, Korean, 미국, 영광, 승리, 평화, 평강, 제일, 중앙, 예수, 마음, Jesus, Christ, Holy Spirit, God, Jesus Christ, Presbyterian Church
  • 17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1885년 이 땅을 찾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백이다. 

그는 복음 전파 외에도 교육과 사회개혁 운동 등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면서 통전적인 선교모델을 제시한 최고의 선교사였다. 특히 언더우드의 한국 사랑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4대 1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에 본보는 '언더우드 전문가'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통해 3회에 걸쳐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편집자 

수천년 동안 질곡의 나날 속에서 방황하던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복음을 허락하시고 희망의 내일을 약속해주셨다. 이 나라의 개신교회는 우리 조상들의 구도(求道)에 의해 시작됐지만 하나님은 미국을 비롯한 호주 캐나다 등지의 교회들이 앞다투어 선교사들을 파송,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게 하셨다. 

 특히 안수를 받은 목사 선교사로 처음 내한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는 선교의 기틀을 잡아주었고 한국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실로 놀라운 열정으로 선교의 모든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 업적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 길이 보존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가장 알맞은 재사를 준비해두셨다가 선교 초기에 보내주셨다. 언더우드가 관여하지 않았던 선교분야는 없었다. 그는 일생을 한국 선교에 바친 우리의 친구였다. 그의 후손들은 4대에 걸쳐 묵묵히 사역을 감당한 한국 교회의 동역자들이다. 

언더우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계통의 뉴 브룬스윅(New Brunswick) 신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 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지를 모색하던 중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약혼녀에게 한국 선교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파혼을 선언하고 언더우드는 홀로 한국을 찾았다. 그때가 1885년 4월5일 부활절 주일로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는 한국어를 익히면서 밖에 나가 서투른 우리 말로 전도를 시도했다. 그는 한국 도착 이듬해에 처음으로 '노도사'(盧道士)라고 불리던 노춘경(盧春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세례식이다. 이듬해 봄에 황해도 소래에서 서상륜(徐相崙)이 그의 동생 경조(景祚)와 다른 두 청년들을 데리고 상경,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았다. 

수세자들이 늘어가자 언더우드는 교회 설립을 서둘렀다. 1887년 9월27일 자기집 사랑방에서 14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2명의 장로를 선출하고 첫 교회를 출범시켰다. 이 교회는 언더우드의 자택이 있던 정동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후에 새문안으로 장소가 옮겨져 '새문안교회'가 됐다. 새문안교회는 한국장로교회의 '어머니 교회'로서 많은 전도인을 각지에 파송,지교회를 설립하는데 힘썼다.

언더우드는 보다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부간의 협력을 추구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지역을 구분해서 선교하는 것 즉,'예양협정'(禮壤協定·Comity Agreement)이다. 한국에서 선교하던 네 장로교회(미국남·북장로교회 캐나다장로교회 호주장로교회) 선교부가 전국을 넷으로 분할,선교했다. 이어 1905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각각 지역을 나눠 선교하면서 중복선교의 피해를 줄였다. 

그는 아울러 선교에 필요한 문서를 제작,인쇄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1888년 '조선성교서회'(Korean Religious Track Society)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문서선교회에 연락,재정지원을 받아 한국의 모든 선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선교 초기 가장 급선무인 성서번역과 인쇄 및 출판을 위해 언더우드는 '성서번역위원회'를 구성,위원장이 된 뒤 순직할 때까지 그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위원회의 노고로 1900년에 신약,1910년에 구약이 완역되면서 한국 교회는 비로소 완역된 신?구약 성경을 소지하게 됐다. 이 일에는 그 누구보다 언더우드의 공이 컸다. 

복음 선교사로서의 언더우드의 사역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문서선교이다. 처음 내한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5년의 각고 끝에 '한글자전'(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을 189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했다. 또한 '한국어 회화 입문'도 출판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사용할 찬송가를 출판하기로 결의하자 언더우드는 1893년 한국인이 작사한 7곡을 넣어 총 116장의 4성부(四聲部) 악보로 된 '찬양가'를 출판했다. 또 기독교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리스도신문'(The Christian News)을 발간했다. 이 신문에는 교회 통신,공업 진흥에 관한 논설,농사법 개량,세계 소식과 일반교양 등은 물론 여러 교회 소식 등을 게재했다. 이 신문 독자의 4분의 1은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로서 전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조선 정부도 467부를 구입,정부 10부처와 367곳에 배포해 계몽지로 활용케 했다. 신문 1부를 약 50명이 돌아가면서 읽어 실제 독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언더우드는 중국에서 오래 선교활동을 했던 존 네비어스(John Nevius) 선교사를 초청,주한 장로교 선교사들을 모아 2주 동안 선교 전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것이 자치(自治) 자립(自立) 자전(自傳)으로 요약되는 네비어스 원리(Nevius Principle)다. 이 선교전략이 한국 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는 감리교회의 아펜젤러와 더불어 한국 YMCA 설립에 공헌했다. 150여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고 1903년 10월 정동 유니온 클럽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가 조직됐다. 이곳은 양반 가정의 자제들의 사교장이자 빈한한 가정 소년들이 기술교육을 받는 곳이 됐다. 또한 야구 농구 배구 탁구 등 근대 구기 보급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제 100배의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초기 선교를 '근대 선교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 기초를 언더우드가 놓은 것이다. 한국 교회는 그가 왜 이 땅에 왔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단 하나의 이유,복음 선교를 위해 왔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역사신학) 교수

김인수 교수 △장로회신학대학 졸업 △미국 유니언신학교 졸업(Ph.D)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총무,한국교회사학회 회장 역임 △저서 '한국기독교회의 역사'외 다수 
 

제목

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1902

아펜젤러 선교사는 언더우드 선교사와 신학교 연맹 모임에서 만나 아주 가깝게 지내면서 세계 선교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전도 종족인 조선민족에게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접하고 자기의 삶을 드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도착하는 날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우리는 부활의 아침에 이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세와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가는 이 민족에게 빛을 비추소서." 아펜젤러는 그의 기도대로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초창기 조선 선교의 장을 열면서 교회사역과 학교사역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로 인도하였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서 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부르심을 받은 어느 날, 아펜젤러 선교사는 집회를 위해 배를 타고 목포로 가고 있었습니다. 항...

View details »

20년만에 원시부족 3만명 복음화

죽음을 무릅 쓴 한 선교사의 오지 전도가 3만명의 미전도 종족을 복음으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샌퍼드에 본부를 둔 뉴 트라이브즈 미션(NTM)은 미신을 숭배하던 필리핀의 미전도 종족이 한 미국인 선교사의 헌신적 사역에 힘입어 20년만에 완전한 기독인들로 성장했다고 최근 밝혔다. NTM에 따르면 민다나오 섬에 사는 히가우논족 3만명은 지난 80년대초까지 원시정령을 숭배하던 미전도 종족이었다.이들 종족은 돌과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수호신의 분노를 사거나 금기를 깨뜨리면 질병 재앙 죽음 등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이들은 제사장인 샤만을 통해 제물을 바치며 재앙이 비껴가기를 기도했다.이들이 올린 제사의식중 가장 끔찍한 것은 유아를 제물로 바치는 것.마을 주민들은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이를 귀신들린 것으로 간주,태어난 즉시 땅에 생매장했다.현재 기독인이 된 한 마을 주민은 “땅에 묻은 ...

View details »

2010 선교계 결산과 전망… 파송 선교사 2만 돌파, 세계 기독교 주류 非서구로

올해 선교계는 일년 내내 에든버러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선교대회가 많았던 한 해였다. 원래 에든버러선교사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200년 전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케리가 세계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며 "100년 뒤에는 케이프타운에서 선교사 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케이프타운 대회 개최는 결국 200년이 지나 '케이프타운 3차 로잔대회'가 바통을 이으며 "전 세계를 향해, 전 교회가 총체적 복음을 전하자"는 결의를 확인하면서 세계 복음화운동을 다짐했다. ◇비서구교회의 선교 약진 실감=에든버러선교사대회가 서구교회 중심의 대회였다면 올해는 비서구 교회가 기독교의 중심으로 전환된 해였다. 10월 25일 폐막된 3차 로잔대회는 이를 확인했다. 국제로잔복음화운동은 "비서구권에서 68%의 대표단이 참석했다"고 밝혀 세계 기독교의 흐름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완전히 ...

View details »

175개국에 동포, 가장 넓게 퍼져 사는 민족

남북한 합한 인구의 10% 726만 명 세계 곳곳 진출1902년 12월 22일 제물포(지금의 인천) 항구. 개신교 신자를 비롯해 121명의 조선인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기 위해 모여들었다. 손에는 대한제국 유민원이 발행한 여행 집조(執照·여권에 해당)가 들려 있었다. 유민원은 요즘으로 치면 이민국에 해당한다. 이들은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했다. 질병검사 등을 거쳐 최종 상륙허가를 받은 사람은 86명. 대한제국이 추진한 첫 공식 이민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하와이 이민보다 39년 앞선 1863년 가을. 함경도 무산 일대에 살던 농민 최운보와 경흥 지역에 살던 양응범이 농민 13가구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에 정착했다. 계절 영농을 위해 연해주로 나갔다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영구적으로 이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올해는 하와이 이민 110주년이다. 하와이 이민은 정부가 주도한 첫 공식 이민이다. 그러나 학계...

View details »

1000번 기도, 100번 전화, 10번 만나 전도

1000번 기도, 100번 전화, 10번 만나 전도 새문안교회 전도상 이애리 씨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왜 날 위해 죽었다는 거야. 말도 안돼."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지체부자유자인 남동생이 병으로 사망하자 이애리(54·새문안교회 집사)씨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1년에 제사를 20번 넘게 지내는 종가에서 불교신자였던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교회에 다니던 그였지만 동생이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자 예수님을 부정했다. 그러나 27세 되던 해 예수님을 만나면서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탈리아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 그룹 회사 여직원들의 노래 지도를 했었다. 이때 직원관리를 하던 총무를 만났다. "총무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대요. 그래서 아내와 40일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부흥회에서 노래를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요." 3일간의 부흥회 마지막 날, 목사님 설교 중 로마서 8...

View details »

[언더우드 선교사의 한국사랑 ⑴ 복음 선교]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1885년 이 땅을 찾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백이다. 그는 복음 전파 외에도 교육과 사회개혁 운동 등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면서 통전적인 선교모델을 제시한 최고의 선교사였다. 특히 언더우드의 한국 사랑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4대 1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에 본보는 '언더우드 전문가'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통해 3회에 걸쳐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편집자 수천년 동안 질곡의 나날 속에서 방황하던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복음을 허락하시고 희망의 내일을 약속해주셨다. 이 나라의 개신교회는 우리 조상들의 구도(求道)에 의해 시작됐지만 하나님은 미국을 비롯한 호주 캐나다 등...

View details »

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

1884년 의료사역과 교육사역에 대한 고종황제의 허락 이후, 조선에 정보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고종황제는 영강 가운데 살아가야 할 조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영어선생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그 요청에 따라 3명의 젊은이들이 언어교사로 오게 되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헐버트 선교사입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던 중,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는 아픔을 겪지만 결코 조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시는 을사보조약이 강제 체결될 무렵이었는데 고종 황제는 조선의 비운과 국권위협의 상황을 세계에 간곡하게 전달할 사절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헐버트는 고종황제로부터 밀사의 요청을 받고 즉시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편지를 들고 워싱턴으로 향했지만 백악관 문 앞에서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당시는 미, 일간의 카츠라 태프트 밀약이 맺어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

View details »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는 1963년 중남미에서 정규 신학공부를 하지 못하는 평신도를 기초부터 가르쳐 사역자, 교회지도자, 평신도 목회자로 양육하기 위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현재 미국, 영국을 위시하여 중남미, 아프리카, 동서남 아시아, 구 소련 각국, 뉴기니아 등 70여개 나라에서 100가지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빅토빌 예수마음교회에서는 2004년부터 시행되게 된다. TEE 프로그램의 장점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TEE의 교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TEE의 교재들, 특히 기초과정인 “풍요로운 삶”의 경우, 한 과를 예습하는 데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며 많은 분들이 “너무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재의 내용은 너무 쉬울 정도이지만 학생들 각자가 집에서 공부한 것과 주어진 실천과제들...

View details »
태그 목록
빅토빌, 빅터빌, 빅토밸리, 빅터밸리, 하이데저트, 샌버나디노,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애플밸리, 헤스페리아, 필랜, 필란, 필렌, 아델란토, 헬렌데일, 바스토, 피논힐스, 라이트우드, 루선밸리, 옥힐, 오로그란데, 교역자, 한인회, 부동산, 학군, school, hotel, 식당, restaurant, sushi, Victorvalley, Victo Valley, Seminary, Semitary, 구원, 복음, 생명, 천국, 사랑, 소망, 믿음, 장로교회, 선교교회, 연합교회, 목사회, 교회협의회, 신학교, 호텔, 경제, 정치, 남가주, 미주, 카운티, county, community, presbyterian church, Victorville, Apple Valley, Hesperia, Phelan, Adelanto, Helendale, Barstow, Pinon Hills, Wrightwood, Lucern Valley, Oak Hills, Oro Grande Korean American Church 한인 교회, 다민족 교회, 개혁 신학 생활 연구소, 한인 목회자 사역회 예수 마음 세계 선교회, SDT 선교회, 신속 정확 편리 정보 방송국, 예수마음 출판사, 한인 교회 연합, 예수마음 성경 대학, 예수마음 교회 그룹, 김성일목사, 김성일 목사, California, San Bernardino, Riverside, Gospel, Faith, Love, Life, pastor, Salvation, heaven, Mission, Southern California Nevada, Las Vegas, 라스베가스, 라스베이거스

서비스 링크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아이디가 없으신 분은

회원가입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