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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생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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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4]-설교자가 자주 내세우는 핑계



  설교가 실패하는 이유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목회하게 될 때, 이 시대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아주 싫
어한다는 어리석은 말로써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아주 천박하고 비열한 변명일 뿐입니다. 시대는 그러한 설교에 대해  그같은 거부감
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시대가 여러분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여러분
의 설교에서 잘못을 찾고 그 다음에 시대 탓으로 돌려야 합니다.

  저는 회중들의 열심과 인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이 문제
에서 조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제가 방금  말씀드린 바
와 같이, 설교인 체 하지만 사실은 설교가 아닌 것에 대해 사람들이 참지 못해 하는
것을 자신의 설교가 실패하는 이유라고 둘러대는 경향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와 정반대 되는 경향으로, 교인들의 너무도 단련된 인내심을 철
석같이 믿고서 자신의 능력을 너무 안심한 나머지 전혀 조심성 없이 설교를 하는 태
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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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가 실패하는 이유
  1.설교가 아닌 것을 설교로 위장한 경우
  2.교인들의 인내심을 믿고 전혀 설교에 대해 연구도 조심성도 없이 해나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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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가지 위험한 경향을 피하는 사람은, 자기 직임의 중요성과 특권을  아는 사
람이고, 교인들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며, 교인들의 무관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력하게 되거나 교인들의  관심을 당연한 것으
로 여겨 조심성이 없어지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 어느 시대의 설교
자가 선 강단이나 말씀을 전한 회중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설교의 함정 뛰어넘기

  이제 잠깐 진리와 인격이라는 설교의 두 요소를 살펴봅시다. 한  가지는 보편적이
고 변치 않는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구체적이고 설교자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 각각에 대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한 두 가지 있습니다. 먼
저 진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진리만 따로 떼 낼 수도 없고 진리만 전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참 묘합니다. 진리에는 으레 인격적인 면이 따라다닙니다. 신약  성경에서 끊임없이
보는 목회 사역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 두 면은 사실 두  마디로 표현되는
데, 하나는 "메시지"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증인" 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같이 썼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
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
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일에서 모든 기독교 설교의 근본 개념을 본다
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전하라고 주신 메시지이지만,  그것이 우리 경험 속으로  들어와
그 영적 능력을 우리 스스로 증거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입니
다. 서재에서 설교를 준비할 때나 강단에서 설교를 전할 때나 항상 자기 앞에 "메시
지"라는 단어를 써놓고 있는 목회자는 터무니없는 사변에 치우치거나 단순히 독창적
인 자기 얘기만 하는 열심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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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성경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처럼, 목회 사역은 두 마디로  표현되는데 하
나는 "메시지"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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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인"이라는 단어를 결코 잊지 않는 목회자는 진리의 진술을 정통  교리로 배웠
지만 그것이 참되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서 단순히 형식적인  진술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비현실성에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항시 이 두 가지  의식, 곧 우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며, 또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다닐 수  있다면 우리는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설교할
때 전적으로 권위와 독립심을 가지고 전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신앙을
아주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아버지의 영이  말씀하시게 될 것
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목소
리로 전하고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시대의 설교에 나타나는 특이한 결점들을 바로 잡는 데는 설교
자들 사이에 자신들이 전해야 하는 진리를 메시지로 인식하는 이  첫번째 개념이 널
리 파급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 같습니다. 강단이 약해지는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은, 교인들이 주일마다 목회자들이 자기들 앞에 서서 일련의 생각을 전달해왔다
고 느끼며 그래서 오늘은 또 어떤 식으로 설교의 "주제를  다룰까" 하고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회중들이 진리에 대해서보다는 설교자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좋지 못한 습관
이 생기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음유 시인이 여러분  앞에서 노래
를 부르면서 기교를 보여 준다면 기지와 운과 목소리가 좋다고 하며 그를 칭찬할 것
입니다. 그러나 밀사가 숨가쁘게 달려와 여러분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가져온 소식에 신경을 쓰느라 그 사람은 잊어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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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단이 약해지는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은, 교인들이 주일마다 목회자들이  자기들
앞에 서서 일련의 생각을 전달해왔다고 느끼며 그래서 오늘은 또  어떤 식으로 설교
의 "주제를 다룰까" 하고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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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들어온 많은 설교 가운데서 늘 기억하고 있는 설교가 있는데, 바로 특성
이 놀랍도록 그 설교 에 잘 베어 있는 점 때문입니다. 한 두 해 전에 미국을 다녀간
영국 작가 조지 맥도널드가 전한 설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맥도널드의 재미있는 문체에는 장단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용감하고
남자다운 정직함이 있었고 감상적인 경향을 또한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전체에 걸쳐서 이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하
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가
능숙하지 않은 혀로 말하려고 애쓰듯이 자신이 받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
님께로부터 받은 내용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야기하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른 설교자들도 나와 별 다를 바 없고 그들 마음속에
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특별히 놀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복
음이 있고 진짜 소식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그 설교자는 잊어버린 것입니다.

  [연재5]-설교자가 메신저라는 의미

  목회를 하면서 여러분은 목회자의 직무를 달리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자신을 메신
저로 생각하는 이 근본적인 개념만큼은 절대로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이 개념을 아주 잘 간직할 수 있을 방법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에  대해서 이야기해
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와 그리스도 진리의 절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강좌
를 시작하면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폭의 특성
  여기서 폭이라고 말했지만 너무  넓은 분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설교를  메시지로
보는 이 개념에 대해 제게 늘  인상깊게 남아 있는 한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오늘날 매우 부족해 보이는 것을 설교에 보충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폭이라는 특성입니다. 저는 지금 생각의 자유로움이라든지,  다른 사
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포용력, 혹은 그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마
음을 넓게 쓰고 위대한 진리를  위대하게 전하며 중요한 직무를  강력하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찮은 주제들, 이를테면, 영혼의 생명에 부차적인 것들, 자잘한 해
석학적 문제들이나 케케묵은 신학 문제 같은 것들을 시시콜콜 난해하고 교묘하게 다
루는 것이 아닙니다.

  토요일에 대도시 목회자들이 다음날 설교하기로 정한 주제들의 목록을 살펴보십시
오. 이 주제들 가운데 설교자들이  성경의 묘한 구석에서 주제 거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많으며, 교인들이 앞에 차려진 식탁에서 얻어 가는 진리가 얼마
나 하찮고 기괴한 것들인지 한 번 보십시오. 그 다음에  배로우(Barrow)나 틸로트슨
(Tillotson), 부쉬넬(Bushnell)의 설교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되자", "하나님만 사람의 행복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신다"는 설교  제목들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세밀화가  있는가
하면 프레스코화의 걸작이 있습니다. 이 종류의 그림은 이 주제에  맞고, 저 종류의
그림은 저 주제에 맞습니다.

  설교자는 누구나 묘한 본문에 이상한 매력을 느끼는 묘한 시기를  거치며, 대부분
의 사람들은 2분이면 할 말이 다 떨어질 수 있는 하찮은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싶은 때라든지, 힘보다는 정교함에, 진리보다는 독창
성에 더 열을 올리는 기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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